Lesson 6 National Pride
본문
The Story Behind Hwaseong Fortress
화성의 뒷이야기
Have you ever visited Cheonggyecheon in Seoul and seen the large painting on a wall that shows a grand procession?
당신은 서울에 있는 청계천을 방문해서 웅장한 행렬을 보여 주는 큰 벽화를 본 적이 있는가?
This painting is called Banchado, and it depicts King Jeongjo leading a royal procession to Hwaseong Fortress in Suwon.
이 그림은 ‘반차도’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수원 화성으로 왕실 행렬을 이끌고 있는 정조대왕을 묘사한다.
Created by Kim Hongdo and well-known artists of the time, the original painting was done on 63 pages and vividly depicts 1,779 characters and 779 horses on a magnificent scale.
원작은 김홍도와 당시의 유명한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63쪽에 달하고 1,779명의 인물들과 779필의 말을 장엄한 규모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But why was King Jeongjo's procession made into a painting?
그런데 왜 정조대왕의 행차가 그림으로 그려졌는가?
Why did the king march to Suwon?
왜 왕은 수원으로 행차했는가?
What made him build and visit Hwaseong Fortress?
무엇이 그로 하여금 화성을 짓고 방문하게 하였는가?
How was it built?
그것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Here, we'll learn about the origin and history of the fortress.
여기서, 우리는 화성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 배울 것이다.
The origin of Hwaseong Fortress
화성의 기원
The origin of Hwaseong Fortress goes back to the late Joseon period.
화성의 기원은 조선 시대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This was a time of political instability because various factions fought for power.
이때는 많은 당파들이 권력 다툼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였다.
In the middle of this political conflict, Sadoseja, King Jeongjo's father, was killed when Jeongjo was only 11 years old.
이러한 정치적 갈등이 일어난 가운데, 정조대왕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정조가 겨우 11세였을 때 살해되었다.
It came as a huge shock to young Jeongjo.
그것은 어린 정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Due to his deep affection for his father, King Jeongjo decided to move his father's tomb from Yangju to Mt. Hwa because it was considered to be an ideal place to build tombs at that time.
그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정조대왕은 아버지의 묘를 양주에서 화산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는데, 그곳은 그 당시에 묘지를 조성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Residents who had been living around the area had to move out, so the king commanded that a new city be built for them, which was Suwon.
그 지역 부근에 살던 거주민들은 이주를 해야만 해서, 왕은 그들을 위해 새 도시가 지어지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그것이 수원이었다.
Hwaseong Fortress was eventually built to protect Suwon and its residents.
화성은 궁극적으로 수원과 그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다.
King Jeongjo paid frequent visits to the fortress to honor his father, showing how deeply he loved and missed him.
정조대왕은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며 그리워하는지를 보여 주며,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화성에 잦은 행차를 하였다.
One of these visits was to celebrate the sixtieth birth year of his parents and it was this visit which was illustrated in Banchado.
이러한 행차 중 한 번은 그의 부모님이 태어난 지 6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졌으며 ‘반차도’에 묘사된 것이 바로 이 행차였다.
Jeongjo’s love for the people
정조의 백성에 대한 사랑
Not only did he love his father, but King Jeongjo also had a big heart for his people.
정조대왕은 그의 아버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 대해서도 또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
The way Hwaseong Fortress was designed showed that he really cared for those living in the area.
화성이 설계된 방식은 그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정말로 보살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The original design of the fortress was a round-shaped wall.
화성의 최초 설계는 둥근 형태의 벽이었다.
However, if the fortress had been built as planned, many residents would have ended up living outside the fortress walls.
하지만, 만약 화성이 계획된 대로 지어졌다면, 많은 거주민들은 결국 성벽 밖에서 살게 되었을 것이다.
The king learned about the situation and delivered an order, saying:
왕은 그 상황에 대해 알고서는 명령을 내리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ven if you have to fold and unfold the fortress walls three times, build the fortress large enough to let all the existing residents live inside the walls."
“비록 너희들이 성벽을 허물고 쌓기를 세 번 할지라도, 모든 기존의 거주민들이 성벽 안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성을 짓도록 하라.”
He did not want any of the residents to be unprotected.
그는 거주민들 중 그 누구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This is why the fortress is shaped like a leaf.
이것이 화성이 나뭇잎 같은 형태를 갖춘 이유이다.
There is another story about King Jeongjo's love for his people.
정조대왕의 백성에 대한 사랑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At that time, people usually worked on public service projects without getting paid.
그 당시에, 사람들은 대개 보수를 받지 않고 공공 서비스 사업에서 작업을 했다.
However, King Jeongjo instructed the government to pay those who worked on this project.
하지만, 정조대왕은 정부로 하여금 이 사업에서 일하는 백성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것을 지시했다.
Also, when the weather became too hot while the fortress was being constructed, the king stopped the construction and supplied workers with Cheokseodan, a pill to beat the heat.
또한, 화성이 건설되고 있는 동안 날씨가 너무 더워지자 왕은 공사를 중단시키고 일꾼들에게 더위를 이길 환약인 ‘척서단’을 하사하였다.
There is even a document that shows his compassion for his people.
심지어 백성에 대한 그의 연민을 보여주는 문서가 있다.
"As the weather is extremely hot, I cannot taste food very well, and I am uncomfortable in bed thinking about the workers suffering in this weather.
“날씨가 극도로 덥기 때문에, 짐은 음식의 맛을 잘 느낄 수가 없도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고통을 겪는 일꾼들에 대해 생각하며 침소에 들자니 마음이 편치 않구나.
Since my sympathy cannot moisten their lungs nor cool their bodies, I am now ordering a special prescription of Cheokseodan and sending the pills to the project site.
나의 연민이 그들의 폐를 축여줄 수 없고 또한 육신을 시원하게 해 줄 수도 없으므로, 내가 지금 명하노니 ‘척서단’을 특별히 처방하여 공사 현장으로 환약을 보낼지어다.
Give them to the workers and let them take the pills with clean water.”
그것들을 일꾼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깨끗한 물과 함께 환약을 복용하도록 하게 하라.”
A new fortress built with modern science
근대 과학으로 지어진 새로운 성
The construction of Hwaseong Fortress began in 1794 and was completed in 1796, after 33 months of work.
화성의 건설은 1794년에 시작되었고 33개월의 작업의 결과 1796년에 완공되었다.
Its primary architect, Jeong Yakyong, employed the latest building techniques of the time.
그것의 주요 설계자인 정약용은 당대의 최신 건축 기법을 사용했다.
The fortress wall, which extends for nearly 6 km, was very advanced in that bricks were used in its construction.
그 성벽은 거의 6km나 이어지는데, 벽돌이 그것의 건설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었다.
Brick walls have the advantage of withstanding heavy blows and are not easily destroyed, so the fortress was made of both bricks and stones.
벽돌 벽은 심한 타격을 견뎌내는 이점을 가지고 있고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성은 벽돌과 돌 두 가지 모두로 만들어졌다.
Moreover, holes between the bricks were just big enough to fire guns and arrows through in case of an attack.
더욱이, 벽돌들 사이의 구멍은 공격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 사이로 총과 화살을 발사할 수 있을 만큼 딱 맞게 컸다.
Jeong Yakyong also came up with new ways to make construction easier for the workers.
정약용은 또한 일꾼들을 위해 건설을 좀 더 쉽게 해줄 새로운 방법들을 생각해 냈다.
For example, he invented a new machine called Geojunggi.
예를 들어, 그는 ‘거중기’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했다.
It was used to lift and pile up heavy stones with the least amount of energy.
그것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쌓는 데 사용되었다.
This tool greatly reduced construction time.
이 도구는 건설 시간을 크게 감소시켰다.
Without it, the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would have taken much longer.
그것이 없었다면, 성의 건설은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Hwaseong Fortress represents the peak of 18th-century Korean architecture.
화성은 18세기 한국 건축학의 절정을 나타낸다.
It is characterized by careful planning and the application of the latest scientific advances.
그것은 세심한 계획과 최신식 과학 발전의 적용으로 특징지어진다.
Its construction started from King Jeongjo's decision to move his father's tomb, and it has now become a cultural heritage site that attracts visitors from all over the world.
그것의 건설은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는 정조대왕의 결정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의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문화 유적지가 되었다.
We have to be aware of its historical significance and make efforts to preserve its architecture and cultural history.
우리는 그것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해서 그것의 건축 양식과 문화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It is now our responsibility to protect this UNESCO World Heritage Site so that our descendants can treasure and enjoy it.
우리의 후손들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즐길 수 있도록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을 보호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책임이다.
Every year in Suwon, a magnificent cultural event takes place to celebrate King Jeongjo's visit to Hwaseong Fortress as depicted in Banchado.
수원에서는 매년, ‘반차도’에 묘사된 대로 정조대왕의 화성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웅장한 문화적 행사가 열린다.
Why don't you visit the fortress and feel King Jeongjo's love for his father and the people that he led?
화성을 방문해서 그의 아버지와 그가 이끌었던 백성에 대한 정조대왕의 사랑을 느껴보는 건 어떤가?
'영어 1 > 영어1 동아 권혁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어1 동아 권혁승 5과 본문 한줄 해석 IoT: Connecting Everything (0) | 2023.02.17 |
---|---|
영어1 동아 권혁승 4과 본문 한줄 해석 Like the Sun (0) | 2023.02.17 |
영어1 동아 권혁승 3과 본문 한줄 해석 Palm Oil, The Biggest Threat to Orangutans (0) | 2023.02.17 |
영어1 동아 권혁승 2과 본문 한줄 해석 Healthy Eating, Healthy Living (0) | 2023.02.17 |
영어1 동아 권혁승 1과 본문 한줄 해석 Shadow Day (0) | 2023.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