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3 Extend Your View of Art
본문
Kim Whanki, Painter of Korean Beauty
김환기, 한국의 아름다움을 그린 화가
Kim Whanki, one of the most beloved Korean artists, is considered the leading figure in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Abstract painters.
가장 사랑받는 한국의 예술가 중 한 명인 김환기는 한국 추상 화가들의 첫 세대에서 선두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He is more than just that, however.
하지만 그는 단지 그것 이상의 인물이다.
All his life, he devoted himself to discovering the essence of Korean beauty.
평생 동안, 그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정수를 발견하는 데 헌신했다.
Moreover, he was a man who never ceased to challenge himself and grow as an artist.
게다가, 그는 스스로에게 도전하며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Kim Whanki was born in 1913, on a small island in South Jeolla Province.
김환기는 1913년에 전라남도의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he spent most of his adolescent years in Seoul and then studied painting in Japan.
일제 강점기 동안, 그는 청소년 시기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고 그런 다음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he became familiar with new trends in Western art, including Abstract painting.
그가 추상화를 포함한 서양 미술의 새로운 동향에 익숙해진 것은 이 시기 동안이었다.
After Korea achieved its independence from Japan, he became both a promising painter and respected professor at an art college in Seoul.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후, 그는 전도유망한 화가이자 서울에 있는 예술 대학의 존경받는 교수가 되었다.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he went to Busan for safety.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His paintings Shanty and Refugee Train portrayed the hard life of the common people during wartime.
그의 그림인 판잣집과 피난열차는 전시의 민중들의 힘든 삶을 그렸다.
However, these paintings are not depressing images.
하지만 이 그림들은 우울한 이미지들이 아니다.
Bright colors and simple lines show hope for life among people who did not give in to their difficult circumstances.
밝은 색상들과 단순한 선들은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Returning to Seoul after the war, Kim Whanki felt a strong desire to capture the essence of the beauty found in traditional Korean art.
전쟁 후에 그가 서울로 돌아왔을 때, 김환기는 한국 전통 미술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담아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He collected old Korean paintings and pottery.
그는 한국의 옛 그림들과 도자기들을 수집했다.
He especially loved large white porcelain moon jars.
그는 특히 커다란 백자 달항아리들을 매우 좋아했다.
When he was asked why moon jars attracted him so much, he said, "Korean jars have broadened my idea of beauty.
왜 달항아리들이 그의 마음을 그토록 끄는지 그는 질문 받았을 때, 그는 “한국 항아리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견해를 넓혀주었습니다.
The jars are like curious textbooks for my paintings."
항아리들은 나의 그림을 위한 별난 교과서들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Along with jars, he often included mountains, plum blossoms, and the moon as subjects in his paintings.
항아리들과 함께, 그는 자주 그의 그림들 안에 산, 매화꽃, 그리고 달을 소재로 포함시켰다.
Paintings like Jars and Plum Blossoms and Jar and Moon represent his love of Korean pottery and other traditional objects.
항아리와 매화와 항아리와 달과 같은 그림들은 한국 도자기와 다른 전통적인 사물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타낸다.
At the time, his painting style was semi-abstract; viewers could see certain forms in his paintings although the objects were simplified.
그 당시, 그의 화풍은 반(半)추상이었다. 사물들이 단순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 안에서 특정한 형태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By the early 1950s, although Kim Whanki had become successful as an artist, he was not satisfied with being an outstanding painter only within Korea.
1950년대 초까지, 비록 김환기가 예술가로서 성공하게 되었지만, 그는 한국 내에서만 뛰어난 화가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In 1956, he resigned from the college and went to Paris, where he lived for three years.
1956년에, 그는 대학을 사임하고 파리로 갔으며, 그곳에서 3년을 살았다.
He concentrated on delivering the beauty of traditional Korean objects on canvas to the people of France.
그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화폭 위에 있는 전통적인 한국의 사물들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During this period, objects were given more simplified shapes, and his art became more abstract.
이 시기 동안에, 사물들은 더욱 단순화된 모양이 되었으며 그의 미술은 더욱 추상적이 되었다.
In his famous work Song of Eternity, he included natural objects from the sipjangsaeng, the 10 symbols of eternal life, such as water, stones, mountains, clouds, and pine trees.
그의 유명한 작품인 영원의 노래 안에 그는 영원한 삶의 열 가지 상징인 십장생의 자연물을 포함시켰는데, 그것들은 예를 들어 물, 돌, 산, 구름, 그리고 소나무와 같은 것이다.
It was praised by art critics for combining Asian concepts and ideals with abstraction
그것은 예술 비평가들로부터 아시아의 개념과 이상을 추상주의와 결합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Kim Whanki returned to Seoul in 1959 and quickly regained his fame as a prominent artist.
김환기는 1959년에 서울로 돌아왔고 저명한 화가로서의 명성을 빠르게 되찾았다.
In 1963 at the age of 50, he became the first Korean artist to be invited to the São Paulo Art Biennale in Brazil.
1963년에 50세의 나이로, 그는 브라질에서 열린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 화가가 되었다.
Meeting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and seeing their works, he decided to go directly from São Paulo to New York to challenge himself and extend his artistic boundaries.
전 세계에서 온 화가들과 만나고 그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도전하고 그의 예술적 경계선을 확장하기 위해 상파울루에서 곧장 뉴욕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Life in New York was not easy.
뉴욕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In the beginning, he received negative reviews from critics.
처음에,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Once an art dealer lied to him and sold his paintings without paying him.
한번은 한 미술상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은 채 그의 그림들을 팔았다.
On another occasion, a group of paintings were lost during an exhibition.
또 다른 때에는, 한 무더기의 그림들이 전시회 동안 분실되었다.
With loneliness and financial difficulty, he tried to find a way to survive in New York as an artist.
외로움과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뉴욕에서 예술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During his 11 years in New York, Kim Whanki's style eventually reached complete abstraction.
뉴욕에서의 11년 동안, 김환기의 화풍은 마침내 완전한 추상주의에 도달했다.
He gradually took away figures and filled his canvases with basic elements such as dots and lines.
그는 점차 형상들을 없앴고 그의 화폭을 점과 선처럼 기본적인 요소들로 채웠다.
His masterpiece, Where, in What Form, Shall We Meet Again?, completed in 1970, is covered with thousands of blue dots.
1970년에 완성된 그의 걸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수천 개의 파란 점들로 채워져 있다.
The title was taken from a famous poem by Kim Kwangsup, which is about looking at the stars and longing for loved ones.
그 제목은 김광섭의 유명한 시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것은 별들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시이다.
Kim Whanki explained, "The dots are the faces of all my friends in Korea.
김환기는 “그 점들은 한국에 있는 내 모든 친구들의 얼굴들입니다.
The faces I was longing for became the stars in my mind and the dots in my painting."
내가 그리워하던 얼굴들이 내 마음속에서 별이 되고 내 그림 속에서 점들이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Starting with that work, he began to use only dots and created his own unique style called "dot painting."
그 작품을 시작하면서, 그는 오직 점들만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점화’라고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In dot paintings, he filled big canvases with countless dots.
점화들에서, 그는 큰 화폭을 무수히 많은 점들로 채웠다.
Most of these paintings were in his characteristic blue tones, which represented the color of the sea near his hometown.
이 그림들 대부분은 그의 특유의 푸른 색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고향 근처에 있는 바다의 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In the Evening
저녁에
Kim Kwangsup
김광섭
Of all those numerous stars,
one in particular looks down upon me.
Of all these countless people,
my eyes are set upon one particular star.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As the night grows deeper,
it fades into brightness
and I disappear into darkness.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Where, in what form
shall the two of us...
you, one so warm, and me, one so tender,
meet again?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Kim Whanki passed away in New York in 1974.
김환기는 1974년에 뉴욕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Throughout his entire life, his artistic passion never grew old or became weak.
그의 일평생 동안, 그의 예술적 열정은 결코 낡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Almost half a century has passed since his death, but his art is still highly respected.
그의 죽음 이후로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예술은 여전히 매우 존경받고 있다.
Meanwhile, his life story helps us realize how important it is to be true to and passionate about our dreams and ideals.
한편, 그의 인생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의 꿈과 이상에 대해 진실하고 열정적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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