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7 A Step Forward
본문
Small Decisions, Big Changes
작은 결정, 큰 변화
We make decisions every day. Should I take the bus or walk?
우리는 매일 결정을 합니다. 버스를 타야 할까, 아니면 걸어야 할까?
Should I help the homeless person or pass him by?
노숙자를 도와주어야 할까. 아니면 지나쳐야 할까?
These decisions are mostly personal, and they seem insignificant at the time.
이러한 결정들은 대부분 개인적이고, 당시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But small decisions can bring about big changes in your life and the world.
하지만 작은 결정들이 여러분의 인생과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Here are three people who made great differences through their small decisions.
여기에 작은 결정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낸 세 사람이 있습니다.
Ed Roberts
에드 로버츠
Ed Roberts became disabled due to polio at the age of fourteen, in 1953.
Ed Roberts는 1953년 14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Paralyzed from the neck down, he could only move two fingers and several toes.
목 아래가 마비되어, 그는 두 개의 손가락과 몇 개의 발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He attended high school by telephone because he was afraid that people would stare at him.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전화로 다녔습니다.
One day during his senior year, Roberts asked himself a question, "Should I stay home or get out and go to school like other people?"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 Roberts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집에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가서 학교에 다녀야 할까?”
Instead of being a prisoner to his disabilities, he decided to think of himself as a "celebrity" and go out into the world.
그는 장애에 갇혀 있는 대신에, 자신을 ‘유명인’으로 여기고 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in 1959, Roberts wanted to study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but they would not admit him because of his disabilities.
195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Roberts는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그의 장애 때문에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Even the California Department of Vocational Rehabilitation refused to help him attend college.
캘리포니아의 직업 재활과 (Department of Vocational Rehabilitation) 조차도 그의 대학 입학을 도와주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The Department's conclusion was that Roberts was too disabled to ever get a job.
학과의 결론은 Roberts가 직장을 구하기에는 너무 장애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Despite the obstacles he faced, Roberts became the first student with severe disabilities to attend Berkeley.
그가 직면한 이러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Roberts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버클리에 입학한 첫 번째 학생이 되었습니다.
His brave decision led many other disabled students to follow suit.
그의 용감한 결정은 많은 다른 장애 학생들이 이를 따라 하게 했습니다.
Roberts started a disabled student organization and led campus projects that provided services like wheelchair repairs.
Roberts는 장애 학생 단체를 시작해서 휠체어 수리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캠퍼스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In 1976, Ed Roberts was appointed Director of the California Department of Vocational Rehabilitation, which was the same agency that had considered him unfit for any job.
1976년에, Ed Roberts는 캘리포니아 직업 재활과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는데, 그곳은 그가 어떤 직업을 갖기에도 부적합하다고 여겼던 기관이었습니다.
Rosa Parks
로사 팍스
It was a cold December evening in 1955.
1955년의 어느 추운 12월 저녁이었습니다.
Rosa Parks, a 42-year-old African American woman, boarded a bus in Montgomery, Alabama to go home after a long day at work.
42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인 Rosa Parks는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버스를 타고 긴 노동의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She sat just behind the ten seats reserved for whites.
그녀는 백인을 위해 지정된 10개의 좌석 바로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At that time, the law separated people of color from whites in schools, housing, jobs, and even on buses.
그 당시에, 법은 학교, 주택, 직장, 심지어 버스에서도 백인과 유색인종을 구분했습니다.
When all the seats for whites were filled, the driver insisted that the blacks give up their seats to white passengers.
백인을 위한 모든 좌석이 가득 찼을 때, 운전사는 흑인들이 백인 승객들에게 그들의 좌석을 양보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Ms. Parks had two choices. She could either stand up to give up her seat or stand up to injustice.
Parks 씨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하거나 불의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She quietly refused to give up her seat. She was arrested for her action.
그녀는 조용히 자리를 양보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이 일로 체포되었습니다.
Four days after her arrest, a boycott of the Montgomery bus system began.
그녀가 체포된 지 나흘만에, 몽고메리 버스 노선에 대한 보이콧이 시작되었습니다.
The boycott lasted 381 days and ended on December 20, 1956 when the U.S. Supreme Court ruled that the segregation law was unconstitutional.
보이콧은 381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미국 연방 대법원이 인종 차별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1956년 12월 20일에 끝났습니다.
The ruling sparked many successful non-violent civil rights protests, and everything began with Rosa Parks‘ small decision on the bus.
판결은 많은 성공적인 비폭력 시민권 시위를 촉발시켰고, Rosa Parks의 버스에서의 작은 결정으로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것입니다.
Nicholas Winton
니콜라스 윈턴
It was a few days before Christmas in 1938.
1938년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었습니다.
The Nazis were taking over Europe, and Nicholas Winton was in London getting prepared for a skiing trip to Switzerland.
나치가 유럽을 점령하고 있었고, Nicholas Winton은 런던에서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He received a letter from his friend, Martin Blake, who was helping refugees in Prague, Czechoslovakia.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난민들을 돕고 있는 친구인 Martin Blake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It read, "I’m on an assignment and I need your help. Don't bother bringing your skis."
그것은 “나는 임무를 수행 중인데 너의 도움이 필요해. 스키는 가져올 필요 없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Winton thought for a moment, "What should I put first, having fun or helping my friend?" He decided to head to Prague.
Winton은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내는 것과 친구를 돕는 것 중에서 무엇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까?” 그는 프라하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In Prague, Winton was struck by the harsh conditions in the refugee camps.
프라하에서, Winton은 난민 캠프의 처참한 상황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They were overcrowded and there was a shortage of food and water.
그곳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식량과 물이 부족했습니다.
Winton became especially concerned for the children there and set up an office in his hotel to aid them.
Winton은 특히 그곳의 아이들이 걱정되어 그들을 돕기 위해 호텔에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He came back to London to arrange the relocation of the children to England.
그는 아이들을 영국으로 보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Winton persuaded complete strangers to take the children in.
Winton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데려가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It was no easy task, but Winton stuck to his motto, "If something is not impossible, then there must be a way to do it.“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Winton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반드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고수했습니다.
Thanks to Winton's efforts, on March 14, 1939, the first train carrying young refugees left Prague, crossed Germany and the Netherlands, and arrived in England after a journey of 1,120 km.
1939년 3월 14일 Winton의 노력 덕분에, 어린 난민들을 태운 첫 번째 열차가 프라하를 떠나 독일과 네덜란드를 지나 1,120km의 여정을 마치고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Seven more trains followed and 669 lives were saved in total.
7대의 열차가 뒤따랐고 총 669명의 생명이 구출되었습니다.
As you can see, the decisions you make today can go a long way.
보시다시피, 여러분이 오늘 내리는 결정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So, think twice before you make your next decision.
따라서, 다음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두 번 생각하십시오.
The future you and possibly the entire world may thank you someday.
미래의 당신,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감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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